1935년 경북 상주 남장사에서 제응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도우스님은 1940년 문경 김룡사에서 강원 대교과를 졸업하고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청담․성철스님의 주도로 시작된 봉암사 결사에 참여했습니다. 스님은 또 의성 고운사, 선산 도리사, 영주 부석사 주지 등을 역임했으며, 도선사 염불선원장으로 주석하면서 납자들을 제접했습니다.
도우스님은 성철스님과의 첫 인연을 법주사 복천암에서의 만남이라고 회고합니다. 그리고 선방에서 성철스님, 청담스님과 함께 할 시절 먹을 것이 너무 없어 고생했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양식은 없고, 이질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생식하던 어려운 시절의 성철스님과의 인연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도우스님은 해방이 된 후 성철스님과 함께 송광사 선방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실이었던 효봉스님은 어인일인지 성철스님의 방부를 거절합니다. 도우스님은 수좌가 아니라 살리하는 스님이라 받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생식을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도 돌았습니다.
송광사에서 일타스님을 만난 도우스님과 성철스님은 결국 파계사 성전암 으로 옮겨 하안거와 동안거를 나게 됩니다. 그리고 해인사에 가야총림이 개설된다는 소식에 스님과 청담스님이 해인사측의 최범술, 환경스님(당시 주지)을 만났으나 재정 문제가 걸려 타협이 결렬되어 가야총림은 방장에 효봉스님을 추대하고, 우봉스님이 총림에 합류하게 됩니다.
도우스님은 성철스님이 아꼈던 백련암 장경각의 고서의 사연에 대해 들려줍니다.
충주의 8백석지기 부자였던 김병용 거사가 선대부터 내려온 불교경전을 보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분이 공부하시는 좋은 스님이 계시면 기증을 하고 싶다는 뜻을 청담스님을 통해 전해와 도우스님이 성철스님을 모시고 직접 이분을 만났다고 합니다. 가서보니 신수대장경 한 질과 종경록 한 질, 대장경판 등 중요한 유산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철스님이 이를 매우 중요한 자료이니 해인사에서 기증을 받자 하여 지금까지 전해지게 됐다고 합니다.
도우스님은 성철스님과 봉암사 결사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십니다. 성철스님은 부처님 법대로 살자며 함께 사는 생활규칙 즉 공주규약을 정하는 데, 대중들에게 그렇게 하겠느냐고 묻고 규약을 정했다고 합니다.
공주규약의 내용으로는 아침은 죽만 먹는다, 나무 발우를 사용하지 않고 철발우를 사용한다. 붉은색 가사를 버리고, 괴색 가사를 입는다.
장삼을 입고 스님들이 절밖으로 외출을 나갈때는 반드시 장삼을 입고 둘 이상이 함께 한다 등이었다고 합니다. 경전과 율장에 나오는 내용에 맞게 흐트러졌던 스님들의 생활수칙을 바로잡자는 취지였습니다. 또 당시에는 거의 하지 않았던 포살 법회를 초하루와 보름에 실시해 계율정신을 바로잡았다고 합니다.
성철스님이 이처럼 봉암사 결사를 통해 바로잡고자했던 것은 일제 식민지시절을 거치면서 희미해진 스님들의 계율을 바로잡고, 부처님 당시의 율장정신에 맞추어 한국불교를 혁신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사정신은 자연스레 해인사 시절의 장좌불와로 이어집니다.
도우스님은 봉암사 결사에 성철스님과 함께 하시고 난후 불교 정화에도 참여합니다. 그 당시 성철스님께 들었던 이야기도 해주십니다. 도우스님은 처음 정화가 시작될때 봉암사에 있다가 절을 접수하러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순순히 절을 내주고 안정사에 있던 성철스님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성철스님은 정화를 하겠다는 이야기에 자신은 그런 것 안한다고 정화가 끝날때까지 일체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청담스님도 처음에는 정화에 참여하지 않았다가 표충사스님의 강권에 못이겨 나왔다고 말합니다.
성철스님의 도반이었던 청담스님과 향곡스님 이야기입니다.
청담스님은 성철스님과 한국불교의 현실을 고민하고 개혁하려 했던 도반입니다. 생각은 조금씩 달라서 정화를 둘러싸고는 의견이 틀어지기도 했지만, 변화해야한다는 생각은 같은 분들이었습니다. 봉암사 결사나 가야총림의 설치도 그 일환이었던 일입니다.
향곡스님은 확철대오를 둘러싸고 성철스님과 입장이 다르기도 했지만, 역시 수행과 깨달음을 향해가는 중요한 도반이었습니다.
성철스님은 봉암사 시절 공주규약을 만들어 부처님법대로 살자고 수행하고 있을때는 엄격하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성철스님은 저녁때 가끔 선방에 내려와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고 대답을 잘 못하면 장군죽비를 내리쳤다고 합니다. 도우스님도 몇번 그 장군죽비에 당한적(?)이 있다고 털어놓습니다. 장군죽비를 내리면 분한 마음이 일어나 수행에 더욱 매진하게 되고, 그렇게 수행의 동기를 주기 위해 종종 스님이 그랬다고 합니다.
- 스님과의 첫 인연
- 법주사 복천암 선방이야기
- 도리사
- 해방전후의 이야기
- 송광사의 방부가 거절되다
- 가야 총림 이야기
- 김병용 씨와의 인연
- 김병용 장서
- 봉암사 결사의 시초 공주규약
- 봉암사 대중과 발우 가사 제정
- 봉암사 일과와 장좌불와
- 불교정화
- 천제굴 토굴
- 성주사 수련원
- 청담스님과 향곡스님 그리고 성철스님
- 조계종 사에서의 위상
- 묘찬스님과 도우스님, 도림스님
- 육조단경 법문과 서산대사 게송
- 광명진언
도우스님 "성철스님이 아꼈던 백련암 장경각의 책들에 숨겨진 이야기" [비하인드 인터뷰]
#성철스님 #장경각책 #김병용거사
* 백련불교문화재단 http://sungchol.org/
* 성철선사상연구원 http://www.songchol.com/?skipintr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