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3.(화) 15:00 빛고을 아트스페이스 소공연장
소리.주소연
고수.김동현
보성소리 동편제 김세종판 조상현류 춘향가 완창발표회
1부 기산영수 ~ 사랑가
판소리의 고향, 광주ㆍ전남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주소연 명창의 춘향가
경인교대 김혜정 교수
소리꾼 주소연
소리꾼들 사이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말이 있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타고난 목이 좋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그를 뛰어넘기 어려움을 한탄한 말이다. 소리꾼에게 악기는 몸이다. 좋은 악기를 갖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는 의미이다. 주소연은 타고난 소리꾼이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악기를 가졌다.
악조, 장단, 시김새, 성음, 붙임새, 목구성 등등...판소리를 설명하는 많은 음악 요소들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판소리의 첫인상은 음량과 음색이 결정짓는다. 일단 그것으로 사람들을 압도하고 공간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소리판인 것이다. 마이크의 힘에 기대어 옛날처럼 폭포수를 뚫는 소리를 내지는 않더라도, 온몸을 사용하여 노래하지 않고 목만 가볍게 쓰는 겉목으로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기 어렵다.
소리는 진동이다. 그것이 귀에 닿는 순간 우리는 이를 소리로 인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 소리의 진동은 우리의 몸에 동시에 도달하므로 그 진동은 몸으로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진동의 매력을 이해하는 많은 이들이 좋은 스피커에 현혹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스피커도 현장의 소리를 넘을 수는 없다.
소리판에서 주소연 명창의 소리를 들을 때, 엄청난 진동이 몸으로 전달되는 순간의 전율은 진심으로 압도적이다. 주소연 명창이 가진 악기의 장점은 풍성하고 강력한 음량만이 아니다. 강하고 안정적인 상청, 그에 못지않은 중하청의 묵직함, 길고 풍성한 호흡의 적절한 활용, 훈련으로 다져진 다양한 목구성과 섬세한 시김새 표현, 발성 위치 변화에 따른 다양한 음색 구사, 소리와 그 안에 담긴 삶에 대한 이해와 성찰 등이 그가 가진 무기들이다. ‘타고남’에서 그치지 않고 꾸준한 노력과 성찰, 삶에 대한 진지함과 적극성이 더해진 결과다. 그리고 이런 장점들이 깊은 공력으로 귀결되고 있다.
주소연 명창의 춘향가
주소연 명창의 춘향가는 보성소리이다. 전라남도 보성에서 완성된 소리제라는 의미의 보성소리는 엄밀하게 춘향가에 대해서만 붙이는 수식이다. 보성에서 전승된 판소리 가운데 춘향가만 박유전의 서편소리와 김세종의 동편소리가 융합한 특별한 소리제이기 때문이다.
서편제와 동편제가 각기 다른 지역을 기반으로 서로 다른 방향의 미적 감수성을 추구했던 시기에서 벗어나 두 소리제가 융합함으로써 더 다양한 예술성을 확보하였던 첫 번째 결과물이 보성소리 춘향가다. 소금과 설탕이 만나 궁극의 간을 맞추었으니 그야말로 판소리사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문화의 융합과 혼효는 ‘창의’로 거듭났다. 보성소리는 진보적이고 열려 있는 전라도 예술가들의 도전이 낳은 창의적 문화인 것이다.
보성소리 춘향가는 동편제나 서편제 춘향가와 달리 구성이 촘촘하다. 우조를 지향하는 담백한 동편제와 계면조가 강한 양념 많은 서편제가 만나 여러 가지 맛을 골고루 갖추도록 구성하였으니 그 섞임이 만든 다양함이 보성소리의 특징인 셈이다. 슬픈 대목이지만 우조를 섞어 씀으로서 슬픔이 더 크게 느껴지도록 만들기도 하고, 평화로운 대목이지만 계면조를 섞어 사용함으로써 완벽함이 없는 삶을 담아내기도 한다. 또 다양한 붙임새의 활용은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차별화하여 전달해준다. 결국 우리의 삶이 한 가지 색깔이 아님을, 그 이치를 사실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는 것이 보성소리인 것이다.
주소연은 정재근-정응민-조상현으로 이어지는 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그의 스승인 조상현 명창은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소리꾼이다. 조상현 명창은 타고난 수리성에 공력을 갖춘 소리꾼이 판소리를 어떻게 가지고 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 명창이다. 조상현 명창은 자신의 역량을 끝까지 끌어내어 최선의 소리를 들려주곤 했다. 그런 명창에게 교육받는 제자들에게는 어려운 난이도의 소리를 받는 일이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상현 선생님과 제자 주소연의 만남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흐뭇한지 모르겠다. 물론 제자의 마음이야 늘 부족함으로 끝이 없겠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는 그저 귀가 행복하여 마음껏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 뿐이다.
판소리의 고향, 광주ㆍ전남의 소리꾼으로서
판소리는 전라도의 음악어법으로 되어 있다. 판소리에는 전라도 사람들의 말투와 전라도 민요의 악조, 장단, 그리고 미적 지향과 감성적 특질까지도 오롯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학계에서는 판소리의 고향으로 충청도나 경기도를 지목하는 연구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제는 판소리가 전라도의 문화라는 사실을 공리(公理)라 여기는 이들이 많지 않다. 판소리의 음악에 전라도성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광주와 전남은 판소리에 대한 기득권을 지켜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는 것의 소중함을 쉽게 잊곤 한다. 멀리 있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환상을 가지면서, 가까이 있는 보물은 쉽게 무시하고 하찮게 대접한다. 광주와 전남에서 판소리를 대하는 자세는 그래서 안타깝고 아쉽다. 이것이 많은 소리꾼이 광주와 전남을 떠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라 소리꾼으로 성장한 이들이 서울이나 타 지역에서 활동하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타 지역에서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전라도의 특질이 자꾸만 거세당하여 전라도 맛이 가득한 판소리가 점점 약화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꿋꿋이 광주와 전남에 뿌리내리고 이 지역의 판소리를 살려 가려고 노력하는 주소연 명창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그가 광주와 전남 판소리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있음에 감사 드린다.
오늘의 춘향가 감상을 위해
오늘 주소연 명창은 춘향가 완창에 도전한다. 판소리 다섯바탕 가운데 가장 긴 춘향가 완창은 어쩌면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6시간에 가까운 소리판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추임새’일 것이다. ‘추여 주는’, ‘추켜세워 주는’.. 즉 칭찬과 공감을 표현해주는 추임새는 소리꾼이 끝까지 기운을 잃지 않고 소리를 끌어가게 만들어주는 윤활유라 할 수 있다. 아낌없는 추임새, 적극적인 소리꾼과의 소통, 공감의 반응을 부탁드린다.
춘향가의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판소리 유파와 바디마다 조금씩 달라지므로 정확히 아는 이는 드물다. 보성소리에서 그려내는 춘향과 이도령, 장모와 향단의 인물상이 어떠한지, 그것을 음악적으로 어떻게 구별하여 표현하는지, 사랑과 이별, 재회의 장면은 어떻게 세밀하게 표현하는지, 말과 노래와 울음과 웃음은 얼마나 가깝고 경계가 없는지 등 들어야 할 것도 많고 느껴야 할 것도 많다.
그러나 오늘은 그저 소리꾼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와 느낌에 집중하시길 권하고 싶다. 춘향가에 대한 지식과 선입견은 접어 두고 주소연이 해석하고 전달하는 그 자체에 빠져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판소리 춘향가는 살아있는 음악이고, 주소연은 유일무이한 한 사람의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그가 해석하고 표현하는 오늘의 춘향가는 살아 있는 생물이며, 오늘만 들을 수 있는 하나의 작품이 될 것이다. 긴 시간이지만 집중하는 만큼 시간은 짧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