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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 바퀴] 힘찬 바다처럼, 진득한 갯벌처럼 머물러 태안과 하나가 된, 진짜배기 태안 사람들의 이야기 (KBS 20230415 방송)

KBS LIFE 8,802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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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 바퀴 (토요일 밤 19시 10분 KBS 1TV) [다시 그리다 반도해변길 – 충청남도 태안] (2023년 4월 15일 방송) ▶ 최서단에서 다시 그린 만리포의 추억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 국토의 최서단, 만리포에 가면 노래비가 먼저 반긴다. 바로 1956년에 나와 수많은 가수들이 열창했던 [만리포 사랑] 노래비다. 실제로 만리포 해수욕장이 개장되던 그해, 함께 발표된 노래라는데 대체 젊은 꿈을 실은 그 똑딱선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과거 만리포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워 중국 사신들이 자주 왕래하던 곳. 노래가 만들어질 무렵에는 인천으로 가는 여객선이 이곳까지 운항하기도 했단다. ‘만리(萬里)’라는 이름만큼은 아니지만 이젠 활처럼 길게 뻗은 백사장이 남아 수많은 갈매기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숱한 세월, 명곡 [만리포 사랑]이 잊히지 않았듯 아직도 만리포는 건재하다. 추억도, 사랑도, 젊은 꿈도 여전히 그곳에 있다. . ▶ 서부시장 명물 자매와 4천 원 바지락 칼국수 지역 불문 칼국수 식당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물가 무서워 장을 못 보는 요즘 세상에 4천 원 바지락 칼국수 집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 게다가 직접 뽑은 면발에 생물 바지락을 산만큼 쌓아준다니, 4천원 칼국수는 취미생활이나 봉사활동이 아니고서야 힘든 가격이다. 서부시장 골목엔 이 힘든 일을 38년째 해내는 일흔의 자매가 있다. 나이는 딱 3살 차이, 다섯 자매 중 넷째, 다섯째라는 장례덕, 장병곤 어머니는 힘들어서 어찌하시냐는 말에 ‘유엔이 지정한 노인은 78세, 우리는 아직 중년’이라는 유머로 화답한다. 테이블은 딱 6개, 일자 주방은 한 사람이 서 있기도 좁지만 자매는 가게를 열고 단 한 번도 2인 체제를 포기한 적이 없단다. 그러니 인건비는커녕, 요즘엔 재료 구하기도 힘들다는 자매. 그럼에도 가게를 접지 않는 건 첫째, 일이 있어야 늙지 않으니까 둘째, 이래야 언니 동생이 매일 만나니까, 라는데. 이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하면 이윤 관계없이 가게는 이어져야 한다니 누가 말릴 수도 없다. 자매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읜 후 시집간 언니들을 두고 어릴 적부터 서로를 보듬으며 살았다. 그러다가 아무도 오가지 않는 시장 길목에 지금의 가게를 얻게 됐고 유동인구가 없는 곳이었기에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했다. 그렇게 38년, 자매는 매일 얼굴 마주할 수 있는 지금의 안식처를 지켜냈다. 자매에게 이 작은 가게는, 칼국수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바지락 수북한 자매 표 손칼국수를 먹으며 이들의 인생사를 잠시 따라가 본다. ▶ 우럭덕장 모자(母子), 지금은 교육 중! 사시사철 잡히는 우럭은 제법 흔한 생선. 오래전부터 서해안 지역 사람들은 잔칫상, 차례상에 우럭 포를 올렸다. 일명 ‘우럭젓국’으로 불리는 충청도 토속음식 또한 이 우럭 포로 만든 것. 그만큼 우럭은 태안 사람들에게 가깝고도 고마운 식재료다. 이맘때쯤, 태안의 중심부, 태안읍의 한 시장을 지나다 보면 입구부터 우럭 말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새벽녘 부지런히 잡은 생선을 이른 아침부터 다듬어 말리는 ‘공동 덕장’ 때문이다. 사계절 내내 잡힌다 한들 생선포를 말리는 적기는 여름이 오기 전, 오직 지금뿐. 벌레도 없고 볕도 적당할 때 부지런히 말려 저장해둬야 그해 가을 장사까진 걱정 없다는 시장 상회 사람들의 손이 말보다 앞선다. 그런데 어째 초보 딱지 못 떼고 버벅거리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 아니나 다를까 삼 개월 전 어머니 곁으로 왔다는 아들 김선일 씨. 외지로 나가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정리하고 여기까지 온 덴 일찍이 홀로 돼 반백 년 가까운 세월, 시장 한 귀퉁이를 지킨 어머니 때문이란다. 금이야 옥이야 귀히 키운 외아들 일 물려주는 것이 처음부터 어머니 성에 다 찼을까. 그래도 평생 혼자 하던 일을 아들과 하니 아들 실수로 엉겁결에 비싼 생선도 들여오고, 덕분에 욕도 푸지게 하고 아주 심심할 여가가 없단다. 시장이 형성되기 전부터 옆집 상회와 돌다리 놓아가며 서부시장의 초석을 다진 시장의 산증인 신순이 여사, 효심 하나로 패기롭게 시장 일을 시작한 3개월 차 아들. 이 모자의 동업은 무사히 이어질 수 있을까? ▶ 소금 밖에 난 몰라! 염전 부부의 ‘내 사랑 백금순’ 태안에 웬 염전일까 싶지만 태안은 과거 끓여 만드는 전통식 소금인 ‘자염’으로 이름 좀 날렸던 동네. 특히 소나무가 많은 지역 특성상 만들어낼 수 있는 송화소금과 태안의 황토를 섞어 만든 황토소금은 명물 중 명물로 손꼽힌다. 하지만 염전 일이 고되다는 건 지나가는 어린아이도 아는 일. 한때 그 많던 염전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수십 년 전 시작한 주인이 이어나가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한데. 시대가 변했기에 당연한 현실이지만 그 어려운 일을 여태 굳건히 해내고 있다는 한 부부. 염전 경력 45년 차,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소금 끌대를 놓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 양질의 소금을 얻기 위해서란다. 이게 다 누구 고집이냐 물으신다면 단연 소금에 애칭까지 붙여가며 소금 얘기만 하면 눈이 반짝이는 자칭 소금 명인 정갑훈 씨 때문. 그런 남편을 만난 탓에 아내 박명희 씨는 ‘아침이면 잡초가 몇 미터씩 자라나고’ ‘염전에 모를 심어도 될 정도로 엉망’이었던 ‘염전 같지도 않은 염전’을 갈고 닦아 내놓은 45년 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염전에서 반강제 노역 중이시란다. 그 연세면 남의 손에 맡길 만도 한데, 그런 일은 결단코 없을 거라는 남편. 이제 손 떼려면 딱 24년 남았다는 남편 갑훈 씨의 끈질긴 집념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눈만 맞추면 티격태격, 그래도 소금이 있어 행복하다는 부부의 짠내 나는 사연을 함께 해본다. #동네한바퀴 #태안 #만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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