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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문]_어젯밤 꿈은 누구의 꿈인가?

삼일선원 4,710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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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선원 – 선불장(選佛場) [특별법문]_어젯밤 꿈은 누구의 꿈인가? 2024년 3월 17일 선재 박준수 선생님의 조사선 법문입니다. 1.(1) 어젯밤 꿈은 오로지 나의 꿈일 뿐이다. 모두 내가 생각을 통하여 만들어 낸 세상이다. 모두 지금 여기 내 일이다. 하나같이 지금 여기 現存一念이요 現存一覺이다. 時空間인 꿈속 넘어 百尺竿頭 進一步한 지금 여기 일일 뿐 시공간은 물론 그 안의 萬物 역시 實體가 없어 如夢幻泡影이다. (2) 어젯밤 꿈뿐이겠는가? 살아오면서 매일 밤 꾸어온 꿈이 이와 같고 앞으로 살아가며 매일 밤 찾아올 꿈이 이와 같다. 꿈일 뿐이었는데 매일 밤 속아왔고 어제도 속았고 또 내일 밤도 그다음 날도 속을 것이다. 2.(1) 오늘의 時空間은 實在하는가? 過去도 얻을 수 없고 現在도 얻을 수 없고 未來도 얻을 수 없다. 東西南北도 얻을 수 없고 上下左右도 얻을 수 없고 內外遠近도 얻을 수 없다. 無常하여 과거의 몸도 마음도 한 物件도 얻을 수 없다. (2) 어젯밤 꿈과 다르지 않아 如夢幻泡影이다. 本來無一物이다. 萬法無自性이다. 我人衆生壽者가 모두 實體가 없는 이름일 뿐이다. 無我다. 꿈과 現實이 모두 꿈일 뿐이다. 3. (1)나는 누구인가? 한 물건도 없어 어젯밤 꿈도 오늘 현실도 하나같이 實體가 없는 그림자요 꿈일 뿐이라면 나는 누구인가? 나도 없고 너도 없어 한 物件도 없는데,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아차리고 앉고 서는 우리 日常은 누구의 일인가? 거기에 行爲者가 따로 없다. 누구의 일도 아니다. 時空間 넘어 百尺竿頭進一步한 지금 여기 일이다. 現存一念이요 現存一覺이다. 이름하여 있는 그대로인 不二의 眞理요 生命이다. (2) 우리 日常이 모두 지금 여기 일이다. 日常이 지금 여기 道요 生命이요 覺이요 있는 그대로이다. 主客未分이어서 한 물건도 따로 없다. 見聞覺知 語默動靜 行住坐臥 日常이 모두 主客未分의 지금 여기 일이다. 4. 眼目만이 貴할 뿐이다. 어젯밤 꿈도 꿈이요, 오늘의 現實도 꿈이다. 꿈일 뿐인데 惡夢과 善夢을 두고 取捨할 것인가? 그렇다 하여 世上 일에 손 놓고 있으라는 말은 아니다. 좋은 세상 만들려 함도 꿈이요 손 놓고 있음도 꿈이다. 取捨함도 꿈이요 取捨하지 않음도 꿈이다. 생각이 하는 일이라면 有爲도 無爲도 모두 有爲다. 有爲도 꿈이요 無爲도 꿈이다. 眞正한 無爲는 無爲도 아니요 有爲도 아니다. 6. 한암 스님 오도(悟道) 과정을 그리고 있는 자전적 구도기입니다. 내가 스물네 살 되던 기해년(己亥年, 1899) 7월 어느 날, 금강산 신계사 보운강희(普雲講會:보운강원)에서 우연히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수심결(修心訣)〉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만약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있고 성품 밖에 법이 있다는 생각에 굳게 집착하여 불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비록 티끌과 같은 한량없는 세월〔劫〕 동안 몸과 팔을 태우며 그리고 모든 경전(經典)을 줄줄 읽고 갖가지 고행을 닦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모래로써 밥을 짓는 것과 같아서 한갓 수고로움만 더할 뿐이다.”는 대목에 이르러, 나도 모르게 온몸이 떨리면서 마치 죽음을 맞이하는 듯하였다. 게다가 장안사(長安寺) 해은암(海恩庵)이 하룻밤 사이에 전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욱더 무상한 것이 마치 타오르는 불과 같았다. 그리하여 모든 계획이 다 헛된 일임을 절감하였다. (신계사 강원에서) 하안거를 마친 뒤 도반 함해선사(含海禪師)와 함께 짐을 꾸려 행각 길에 올라 점점 남쪽으로 내려가 성주 청암사(靑岩寺) 수도암(修道庵)에 도착하였다. (여기엔 경허화상이 계셨는데) 경허화상(鏡虛和尙)께서 "무릇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만일 모든 형상이 상(相)이 아님을 간파한다면 곧바로 여래(如來)를 볼 수 있을 것이다.”는 (금강경) 법문에 이르러, 문득 안광(眼光)이 확 열리면서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눈 속으로 들어오니, 모든 사물(事物)이 다 ‘나〔我〕’ 아님이 없었다. (수도암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서 (다음 날) 경허화상과 함께 합천 해인사로 가는 도중에 (문득 화상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고인(古人)이 이르기를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가네. 다리는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네’라고 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내가 답하였다. "물은 진(眞)이요, 다리는 망(妄)입니다. 망(妄)은 흘러도 진(眞)은 흐르지 않습니다.” 경허화상께서 말씀하셨다. "이치로 보면 참으로 그렇지만, 그러나 물은 밤낮으로 흘러도 흐르지 않는 이치가 있고, 다리는 밤낮으로 서 있어도 서 있지 않는 이치가 있는 것이네.” 내가 다시 여쭈었다. “일체 만물은 다 시작과 끝, 본(本)과 말(末)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본래 마음은 탁 트여서 시종(始終)과 본말(本末)이 없습니다. 그 이치가 결국은 어떠한 것입니까?” 경허화상께서 답하셨다. "그것이 바로 원각경계(圓覺境界)이네. 경(經, 원각경)에 이르기를 ‘사유심(思惟心, 분별심)으로 여래의 원각경계를 헤아리고자 한다면, 그것은 마치 반딧불로써 수미산을 태우려고 하는 것과 같아서 끝내는 태울 수 없다’라고 하였네.” 내가 또 여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여래의 원각경계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화두를 들어서 계속 참구해 가면 끝내는 깨달을 수 있게 되네.” "만약 화두도 망(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화두도 망(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것은 곧 화두 참구가 잘못된 것이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 즉시 '무(無)’자 화두를 참구하게.” 해인사 선원에서 동안거를 보내고 있던 중 하루는 게송을 하나 지었다. “다리〔脚〕 아래는 푸른 하늘, 머리 위에는 산, 쾌활한 남아(男兒)가 여기에 이른다면 절름발이도 걷고 눈먼 자도 보게 되리 북산(北山)은 말없이 남산(南山)을 마주하고 있네.” 경허화상께서 이 게송을 보시고는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각하청천(脚下靑天)과 북산무어(北山無語)’ 이 두 구(句)는 맞지만 ‘쾌활남아(快活男兒)와 파자능행(跛者能行)’ 구(句)는 틀렸네.” 하시었다. (해인사에서) 동안거를 지낸 뒤 화상께서는 통도사와 범어사로 떠나셨지만, 나는 그대로 남아 있다가 우연히 병에 걸려 거의 죽을 뻔하다 살아났다. 해인사에서 하안거를 마치고 곧바로 만행 길에 올라 통도사 백운암에 이르러 몇 달 있던 중, 하루는 입선을 알리는 죽비소리를 듣고 또다시 개오처가 있었다. 그 뒤 동행하는 스님에게 이끌려 범어사 안양암에서 겨울을 지내고, 다음 해 봄에 다시 백운암으로 돌아와 하안거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 경허화상께서는 청암사 조실로 계셨는데, 급히 편지를 보내 나를 부르셨다. 나는 행장을 꾸려 가지고 청암사로 가서 화상을 뵈었다. 청암사에서 하안거를 보낸 다음 가을에 다시 해인사 선원으로 왔다. 계묘년(1903) 여름, 사중(寺中 : 해인사)에서 화상을 조실로 모시고자 청하였다. 그 때 화상께서는 범어사에 계시다가 해인사 선원으로 오시어 선원 대중 20여 명과 함께 하안거 결제를 하셨다. 하루는 대중과 함께 차를 마시던 중 어떤 수좌가 선요(禪要)에 있는 구절을 가지고 경허화상에게 여쭈었다. “(고봉화상의 《禪要》에 보면) ‘어떤 것이 진정으로 참구하는 것이며, 진정으로 깨닫는 소식인고? 질문’에 답하기를 남산에서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서는 비가 내리도다.’ 이런 말이 있는데, 묻겠습니다만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경허화상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한다면 그것은 마치 자벌레가 한 자를 갈 때 한 바퀴 굴러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라고 하시고는, 대중들에게 "이것이 무슨 도리인고?”하고 물으셨다. 내가 답하였다. "창문을 활짝 열고 앉으니 담장이 눈앞에 있습니다.” 화상께서 다음 날(하안거 해제일) 법상에 올라 대중들을 돌아보시면서 말씀하셨다. “원선화(遠禪和 : 漢岩重遠)의 공부가 개심(開心)의 경지를 넘었도다. 그러나 아직은 무엇이 체(體)고 무엇이 용(用)인지 잘 모르고 있도다.” 이어 동산(洞山)화상의 법어를 인용하여 설하시기를, "늦여름 초가을 사형사제들이 각자 흩어져 떠나되, (곧바로) 일만리(一萬里) 풀 한 포기도 없는 곳 (역자 주 : 번뇌망념이 없는 곳) 으로 가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노라. 나라면 ‘늦여름 초가을 사형사제들이 각각 흩어져 떠나되, 길 위의 잡초를 낱낱이 밟고 가야만 비로소 옳다’고 말하리니, 나의 이 말이 동산화상의 말과 같은가 다른가?” 대중이 아무 말이 없자 화상께서 말씀하셨다.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 스스로 답하겠다.”하시고는 아무런 말씀도 없이 법상에서 내려오시어 방장실로 돌아가 버렸다. 해인사에서 하안거를 지낸 뒤 화상께서는 범어사로 떠나셨다. 대중들도 모두 흩어졌으나 나는 병에 걸려 그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전등록》을 보다가 약산화상과 석두화상의 대화 가운데 “한 물건도 작위(作爲)하지 않는다(一物不爲)” 고 하는 대목에 이르러 문득 심로(心路:망심, 분별심)가 뚝 끊어지는 것이 마치 물통 밑이 확 빠지는 것과 같았다. 그 해(1903~4) 겨울 경허화상께서는 북쪽(갑산)으로 잠적하셨는데, 그 뒤로는 더이상 뵐 수가 없었다. 갑진년(甲辰年 : 1904)에 다시 통도사로 가서 용돈이 좀 생겨 병을 치료했지만 고치지도 못한 채 인연을 따라 6년 세월을 보냈다. 경술년(庚戌年 : 1910) 봄 묘향산 내원암에서 하안거를 보내고 가을엔 금선대로 가서 겨울과 여름 두 철을 지냈다. 이듬해 가을(1911)엔 맹산 우두암으로 가서 겨울을 지냈다. 다음 해(1912) 봄 어느 날 함께 지내고 있던 도반(사리)이 식량을 구하러 밖으로 나간 사이에, 혼자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붙이다가 홀연히 발오(發悟)하니, 처음 수도암에서 개오(開悟)할 때와 더불어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한 줄기 활로가 부딪치는 곳마다 분명했다 부엌에서 불붙이다 홀연히 눈이 밝았네. 이로부터 옛길〔古路〕은 인연 따라 청정했네. 만일 누가 나에게 조사서래의를 묻는다면 바위 아래 물소리 젖는 일 없다 하리. 삽살개는 나그네를 보고 어지럽게 짖네. 산새는 사람을 조롱하듯 지저귀네. 만고에 빛나는 마음 달〔心月〕이여. 하루 아침에 세상 바람을 모두 쓸어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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