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말초신경

그녀의 말초신경 그녀는 항상 먼저 반응했다. 손끝에서, 발끝에서, 피부 한 조각에서조차 세상의 모든 신호를 감지했다. 바람이 스치면 소름이 돋았고, 누군가의 시선이 닿으면 어깨가 먼저 움찔였다. 커피잔을 들었을 때, 열기가 손바닥에 스며들기도 전에 이미 뜨겁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말초신경은 그녀보다 빨랐다. 어떤 감정이 마음속에서 생성되기도 전에, 이미 몸이 그 신호를 해석하고 있었다. 슬픔이 찾아오기도 전에 목이 먼저 메었고, 두려움이 의식에 도달하기도 전에 심장이 먼저 뛰었다. 가끔은 화를 내고 싶지 않은데, 손이 먼저 떨렸다. 사랑을 확인하고 싶지 않은데, 입술이 먼저 미세하게 열렸다. 그녀는 그게 싫었다. 생각보다 빠른 몸, 감정보다 민감한 감각. 그것은 그녀의 의지를 배반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는 자기 자신을 속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초신경은 진실을 먼저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손을 잡았을 때, 손바닥은 이미 식어 있었다. 그녀가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는 순간, 눈물샘은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거짓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목소리는 떨렸고, 손끝이 흔들렸다. 그녀는 안다. 결국, 그녀의 말초신경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자신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