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로 ‘바람’은 ‘루아흐’이다. ‘루아흐’는 ‘(하느님의) 숨결’, 또는 ‘(하느님의) 영’으로 옮긴다. 같은 낱말이 ‘숨’도 되고 ‘영’도 되고 ‘바람’도 된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바람은 중요한 상징이다. 특히 바람은 가변적 본질을 지녔다. 곧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넓은 지역을 종횡무진 휩쓸고 다니는 특징 때문에 다양하게 사용된다. 떠돌아다니는 바람은 허무나 불안을, 비를 뿌리는 바람은 풍요를, 약하고 부드러운 바람은 상쾌함을, 태풍같이 거센 바람은 파괴를 상징한다. 다른 종교에서도 이런 모습이 드러난다.
바람은 다양한 종교에서 ‘인격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단군신화에도 비와 구름과 바람을 상징하는 세신 우사(雨師)와 운사(雲師), 풍백(風伯)이 등장한다. 비와 구름과 바람의 세 신은 농경을 위주로 하는 우리민족에게 아주 중요한 신이었다. 바람신은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삼는 해양민족에게 ‘모든 것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세계 여러 언어에서 ‘바람’과 ‘불다’의 어근이 비슷하다. 특히 그 소리가 그렇다. 우리말의 ‘바람’과 ‘불다’의 공통 자음은 ‘ㅂ-ㄹ’이다. 곧, 순음(ㅂ,ㅍ,ㅁ 등 입술소리)과 치음의 공명음(ㄹ,ㄴ 등)의 순서다. ‘불다’를 뜻하는 영어 ‘블로우’blow나 독일어 ‘블라젠’blasen도 자음의 순서가 ‘b-l’로 같다. 한자 ‘풍’風(p-ng)의 우리말 발음이나 현대 중국어 발음 ‘펭’fe˘ng도(f-ng), 그리스어 ‘프네우마’ 명사를 만드는 어미 ‘-마’-μα를 제외) 같은 계통의 자음으로 구성된다(ㅍ-ㄴ). ‘불다, 내뿜다’를 뜻하는 라틴어 ‘에플로’efflo와 여기서 파생한 불어의 ‘수플레’souffler에도 이 어근이 숨어 있다. 아마 바람을 처음 배우는 아기말, 곧 ‘푸웅-’(또는 뿌우-) 하고 입술을 모아 세차게 부는 음성어에서 자연스레 유래했을 것이다. 훗날 ‘성령’으로 신학적 발전을 하는 ‘바람’은 본래 인류의 종교와 언어에 보편적인 존재였다.
구약성경의 무대인 팔레스티나는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다. 바다와 육지가 접하고 바로 산악지대와 강이 겹쳐 있는 변화가 심한 팔레스티나의 지형은 바람이 잘 부는 조건을 갖췃다. 바람(루아흐)은 구약성경의 주무대인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존재였다. 고대 근동지역에서 이슬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사실은, 우가릿 신화에서 풍산신 바알의 딸의 이름이 ‘이슬’인 데서도 알 수 있다. 물이 귀했던 고대 근동지역에서 잎사귀에 맺히는 영롱한 이슬은 풍요의 전조였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늘의 이슬’이란 표현은 메마른 땅을 적셔주는 이슬이니 귀하고도 귀한 존재라는 뜻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늘의 이슬’은 풍요를 묘사하는 맥락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모세는 유언으로 남긴 아름다운 시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같다고 표현했다. 메마른 팔레스티나 땅에서 비는 풍요의 상징이었다. 이슬 또한 금방 증발되어 버리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 비나 소나기처럼 풍요의 근원으로 당당히 이름을 알렸다. 풍요의 신 바알의 세 딸들의 이름이 ‘이슬’, ‘안개’, ‘비’에서 보여지듯 고대 근동에서 이슬은 신으로 섬겨질 만큼 소중한 존재였다.
팔레스티나에서 바람은 다양했다. 규칙적으로 부는, 습기를 머금어 이슬을 맺는 바람은 예측 가능하고 농사에 도움을 주는 이로운 바람이다. 한편 겨울이면 이 지역의 규칙적인 바람은 잦아들지만, 때때로 지중해에서 폭풍이 밀려 와서 비를 뿌려 준다. 강풍을 동반하거나 눈이 내리기도 한다. 한편 봄과 가을에는 동쪽 광야에서 먼지를 동반한 덥고 건조한 바람이 분다. 지돌르 보자. 동풍은 이런 바람이다. 이 메마른 바람은 작물에 좋지 않고, 인간에게도 기분 나쁜 파괴의 바람이다. 요나서를 보라. 뙤악볕 아래의 동풍을 맞으면 죽기를 자청할 만큼 괴롭단다.
#고대 근동의 바람
동부셈어를 쓰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바람은 풍우신 ‘하다두’(Hadadu 또는 핫두Haddu)의 통제하에 있었다. 반면 고대 이집트에서 바람은 인격신으로 다양한 신화에서 언급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바람신 슈는 동서남북 바다 위에 있다가 습기를 머금고 불어와 온 세상을 적셔 주는 신으로 땅을 경작할 수 있게 하는 신이요, 생명을 살리는 중요한 신이었다.
테베에서 바람신은 최고신 ‘아문’Amun의 통제를 받는 존재로 최고신이 거느려야 할 필수적인 하위신 가운데 하나로 이해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이집트 유적에 바람은 공통적으로 사람의 몸에 다양한 짐승의 머리가 붙은 모습, 또는 짐승의 몸에 양의 머리가 하나 또는 여러 개 붙은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날개를 달고 머리마다 깃털이 꽂혀 있는 점이 특징이다. 날개와 깃털은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흔들리는 바람의 속성을, 머리가 여럿임은 바람의 예측 불가능성을 상징한 것이리라.
그리스어로 바람신을 ‘아네모이’라고 한다. 아네모이는 그런데 실제로 넷이었고, 저마다 이름이 있다. 북풍은 ‘보레아스’(겨울을 일으킨다), 남풍은 ‘노토스’(여름을 일으킨다), 동풍은 ‘에우로스’, 서풍은 ‘제퓌로스’(봄을 일으킨다)라 한다. 이 네 신은 석양의 신 ‘아스트라이오스’와 새벽녘의 신 ‘에오스’(태양신 헬리오스와 달신 셀레나의 누이다)사이에서 난 자식인데, 제우스는 이 넷의 양육을 역시 바람신인 ‘아일로스’에게 맡긴다. 그는 이 어린 바람신 넷을 모아 섬에서 기른다. 왜 바람은 저 바닷가 섬에서 불어올까? 그리스인들은 바람이 바다쪽 섬에서 불어 오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 듯 하다. 바람신은 섬에서 자라났다.
한편 그리스어로 ‘프네우마’는 본디 ‘숨’을 뜻했다. 원래는 그저 호흡을 뜻했지만, 나중에 우주의 삼라만상에 깃든 ‘영’靈을 뜻하게 되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에선 ‘바람’과 ‘숨’이 모두 ‘루아흐’라는 하나의 낱말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그리스어에는 바람에 관련된 단어만도 이렇듯 여러 개가 된다. 그래서 칠십인역은 ‘루아흐’를 다양하게 옮길 수 있었다.
이집트와 그리스 등에서 바람은 분명 인격신의 모습을 띠었지만, 구약성경에서는 인격신의 특징이 거의 사라진다. 구약성경에는 바람이 신으로서 경배 받는 구절이 없다. 고대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은 바람신도 탈신화했지만 바람의 독특한 신화적 모티프 자체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날개 달린 바람
구약성경에서 바람에 ‘날개’가 달렸다고 표현되는 곳이 세 군데 있다. 이 표현 부터가 신화적이다. 이집트 바람신은 여러 가지 얼굴을 지녔다, 깃털이 달렸다 이런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신화의 언어로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잘 보면, 여기서 바람은 신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물 위에 당신의 거처를 세우시는 분.
구름을 당신 수레로 삼으시고
루아흐(바람) 날개 타고 다니시는 분
(시편 104,3)
바람에 날개가 달렸기에, 루아흐는 날개 달린 거룩한 짐승인 커룹과 비교될 수 있다.
“커룹 위에 올라 날아가시고 루아흐(바람) 날개 타고 나타나셨네” (2사무 22,11/시편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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