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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 복음사경회] 3강. 자유를 허락하는 사랑 🎤 조정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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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노트
0:00 Intro 자유롭게 하는 십자가의 사랑위에 세워진 공동체 ‘교회’
어느 날 예수님을 알게 돼서 첫 번째 가슴을 친 단어가 ‘자유’라는 단어이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1-32)
목적 없이 방황하는 삶의 코스를 돌이켜서 목적이 뚜렷한 한 방향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을 우리는 ‘구원’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분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몸값을 지불해서 자유롭게 하신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을 채워주는 그 콘텐츠가 ‘성령’이다. 그런 과정에서 탄생한 것을 우리는 ‘교회’라고 부르는 데, 예수님의 프로젝트가 바로 Church Project. 교회는 십자가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되어있는 하나님의 공동체로서 권력 의지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권력 의지를 가지고 권력의 길을 갈 수도, 가고도 싶지만 그러나 그 길을 돌이켜서 정반대로 사랑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가는 공동체를 우리는 ‘교회’라고 부르는 것. 예수님은 이런 공동체를 탄생 시키시려고 이 땅에서 십자가를 지셨다. 십자가의 길, 오직 그 사랑의 길만이 답이라는 것을 믿고 따라가자.

1:43 주제 성구 - ‘자유를 허락하는 사랑’이라는 주제 하에 복음의 핵심을 논하고자 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 13:34-35)

3:25 자유의 본질과 한계 – 사랑은 자유를 제공하기 원하지만 진정한 자유에는 ‘제약’이 따른다.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전폭적이고 무한에 가까운 자유를 제공하게 된다. 내 맘대로 통제, 조종하거나 맘대 끌고 가려하지 않는다. 성경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처음부터 자유롭게 하셨다고 말한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에덴-‘기쁨’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 쫓겨나 사람들은 점점 자유가 제한되게 된다.
에덴을 떠나 동으로 동으로.. 사람들은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다. 왜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셨을까? 제한이 있어야 자유로서의 의미가 있다. 제한이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사실 엄청 큰 차이가 있는 존재이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정체성 차이. 내가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된다면? 모든 사람을 적으로 알고 싸우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토마스 홉스).가 되고 만다. 내가 옳음의 기준이 되면 답이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에서 자유롭게 해 주시려고 선물을 주신 것이다. 우리는 누구도 의롭지 않다. 예수님을 찾아온 젊은 관원의 질문 - “선한 선생님이여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은 관원의 잘못된 질문을 수정하신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 이 세상에는 선한 이가 없다. 절대적 하나님의 기준에서 상대적인 기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고, 스스로의 잣대로 내리는 판단이 되어 상대방을 정죄하는 것이 되면 살인이 되고, 갈등이 되고, 전쟁이 된다. 인류역사에 전쟁이 그친 날은 없다. 하나님이 한 가지를 제한하신 이유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이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전폭적인 자유가 주어지지만 자유의 진정한 ‘자유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제약이 있어야 한다.

19:36 하나님의 사랑방식 ‘자유를 허락하는 방식’ - 믿음은 그분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
주님은 이 자유를 강압으로 지키지 않으신다. 우리를 구출하러 오셨을 뿐인데 오히려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 – 인질이 인질범들에게 동화되어 그들에게 동조하는 비이성적 현상을 가리키는 범죄심리학 용어 – 과 같이 왜곡된 사람들, 그 분을 적대시 하는 사람들에 의해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그리고 그렇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과 같은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의 사랑은 조변석개-朝變夕改 와 같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사랑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1-7)

인간 어디에 이런 사랑이 있는가? 그러나 십자가의 예수님의 사랑을 품기만 하면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가능하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 믿는 다는 것은 기적. 예수 믿고 변하지 않으면 더 ‘기적’. 왜? 자유해지지 않았으니까. 여전히 자기 기준으로 살고 있으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얽매이는 것에서 자유하게 하신다. 예수님의 이러한 사랑방식 때문에 여러분에게 믿음을 권하고 싶다. 기독교의 본질을 사랑이라고 한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찾아온 율법학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전부라고 그것이 율법의 완성이고 모든 신앙의 핵심이라고 이야기 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40)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다 가짜이다. 남을 여전히 판단하고 차별한다면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신다. 간음하다 잡혀왔던 여인에게 새로운 길을 주셨던 것처럼.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8:7-11)

사랑은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한다. 숨을 쉬게 한다. 죄를 이길 힘을 준다.
믿음은 부정으로 사람을 통제하지 않고 사랑의 긍정으로 자유롭게 한다.

성경전체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 이 진짜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사람은 음란해지고, 대체물을 찾아 중독적이 되고, 주도권 싸움을 하느라 권력적이 된다. 그런데 진짜 사랑은 져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십자가만큼 우리에게 져 주신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8)
예수님을 모르면 ‘아이’이다. 죄 문제가 해결 안되면 ‘어린아이’이다. 그래서 ‘구원’받아야 하는 것이고, 예수님 믿어야 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46:03 간증 – 사랑으로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때
극과 극인 아내... 매력이자 지옥. 핵심만 추려 다루던 방송인인 나는 아내의 많은 이야기를 길게 들어준 적이 없다. 그리고 닫힌 아내의 맘과 입. 예수 믿고 그 이야기를 일 년 반 정도 오래 들어주었더니 아내가 해준 말 “여보, 이제 당신을 믿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날 인생에 성공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오래참고 들어준 사랑의 결과.. 아내의 믿음을 얻었다. 인생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된 것.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1:11-13)

사랑은 영원하다. 천국은 사랑으로 사는 곳. 여기서부터 사랑받고 사랑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진실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만날 때, 그 분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그 분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할 때, 우리가 그 사랑을 받을 때,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알게 되고, 하게 되고, 사랑을 받을 줄도 알게 된다.

52:28 권력의 질서를 뒤집는 사랑의 혁명을 시작하신 예수님
그 분의 사랑에 눈뜨고 접속되었을 때 인간의 사랑에 연연해 하지 않게 된다. 사랑은 말없이 배려하는 삶의 태도. 그런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본다. 수양의 개념이 없기에. 반면 타종교는 수양으로 적선하며 자기를 절제하는 훈련을 한다. 진짜 사랑하면 더 이상 상대방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베풀 뿐이다. 권력적 질서를 뒤집는 것이 사랑의 혁명을 시작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 이후로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님 이전에 온 사람들은 절도용 강도(요한복음 10:8-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브로커 노릇. 권력행사)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 우리는 사랑할 능력이 없다.
사랑하기 위해 예수님을 초청해서 내 안에 모시고 내 안에 계신 그분이 누군가를 바라보고 누군가를 섬기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느 길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교만할 수 없다. 내가 한 일이 없기에.

나는 그 분이 나에게 무엇을 허락하든지 다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함, 그 분의 사랑을 알고, 믿고, 누리게 되길 바란다.
59:56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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