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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없음을 아는 것이 믿음이다 ] 연중 제7주간 월요일, 전삼용 요셉 신부, 2025 02 24

순전한 가톨릭(Mere Catholicism) 3,060 lượt xem 1 day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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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다해 연중 제7주간 월요일 – 믿음이 없음을 아는 것이 믿음이다.

신앙인 대부분이 그러하시겠지만, 저도 항상 어디를 갈 때 함께 가는 이들에게 묵주기도 5단을 하자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안전한 여행을 위해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우리가 그렇게 안전하게 잘 다녀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기도하면 ‘기도했으니, 지켜주시겠지!’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7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기 전에는 연옥에 당연히 갈 것이라 여겼지만, 하면서 연옥에 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점점 생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대로 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기도를 통해증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한 아버지가 예수님께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간청하는 장면을 마주합니다. 어찌 보면 이 말은 모순처럼 들리지만,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9)라고 하심으로써, ‘믿음’이 구체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적임을 강조하십니다.

영화 ‘사인즈(Signs)’ 속 그레이엄은 성공회 사제입니다. 아내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귀여운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그레이엄은 하느님이 계신다면 어째서 자기 아내를 데려갔느냐며 사제복을 벗었습니다.

그런데 마을과 세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외계인이 침공한 것입니다. 결국 그의 아들이 외계인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 그는 전혀 기도할 줄도 모른다는 걸 재인식하게 됩니다. 그래도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만을 살려달라고 기도했고, 아들은 살았습니다. 아들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을 때 그레이엄은 대답합니다.
“누군가 널 도와주셨어.”

이 이야기는, 겉으로는 “사제였으니 나는 당연히 한때 신앙심이 있었다.”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기도를 완전히 포기한 채 살아온 사람이 위기 앞에서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결국 그레이엄은 아내의 죽음과 아들의 위기를 통해 비로소 다시 기도를 선택하게 되었고, 이것이 그의 믿음을 새롭게 작동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마귀가 노리는 것은 ‘믿음 없음’이 아니라, ‘믿음이 이미 충분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아이 아버지는 예수님께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계속 청합니다. 사실 이 고백 자체가 이미 믿음의 시작임을 보여 줍니다. 진정한 믿음이라면, 주님께 자기 부족함을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성인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기도로 다시 불붙은’ 사례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를 들 수 있습니다. 데레사는 젊은 시절 수도원에 들어간 뒤에도, 한동안은 기도에 전념하지 못하고 세속적 대화나 활동에 더 마음을 두었습니다. 스스로 “수도자이니 이미 충분히 경건하다.”라고 여기는 착각도 있었지요. 그러나 심한 병을 앓아 죽음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회복된 뒤, 자신이 “참으로 진지한 기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철저히 기도 생활을 쇄신합니다. 매일 묵상과 침묵 속에서 “주님, 저는 부족합니다. 저에게 힘을 주소서.”라고 청하며,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찬 기도를 다시 회복해 갔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녀는 깊은 관상과 신비체험을 하게 되고,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하는 등 교회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바로 그 과정이 영적으로 메말랐던 자신을 회개시킨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데레사는 여러 저술을 통해 기도의 중요성을 직접 역설하는데, 특히 《완덕의 길(The Way of Perfection)》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기도란 결코 다름 아닌, 친구 사이의 친밀한 대화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주님을 찾기 위해 날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심을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이처럼 성녀는 우리가 스스로 영적으로 뛰어나다고 착각하지 않고, 날마다 ‘내가 부족하다’라는 걸 인정하며 기도로 나아갈 때 비로소 하느님 은총이 크게 드러난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이에 따라 “믿음이 없음을 아는 것이 믿음이다.”라는 주제는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완전하다고 여기지 않고, “주님, 저는 부족합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순간, 비로소 믿음이 기도를 작동시키기 시작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가 그대로 받게 될 것이다.”(마르 11,24)라는 가르침과도 맥을 같이합니다. 즉, 우리의 믿음이 움직일 때 기도가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지요.

마귀가 노리는 것은 우리가 ‘믿음이 없다’고 좌절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믿음이 충분하다고 착각’하여 기도를 소홀히 하도록 만드는 함정입니다. 마음 한구석의 불신, 혹은 잘못된 자기만족을 부추김으로써 영적 방심을 유도합니다.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에서 노련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악마 웜우드에게 전하는 직접적인 충고를 인용하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인간이 ‘원수(하느님)’ 그 자체께 시선을 두면 우리는 패배를 면치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을 하느님에게서 돌려 자기 자신만 바라보게 만들면, 쉽게 기도에서 멀어지도록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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