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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뉴스]
서현아 앵커
세상을 연결하는 뉴스, 뉴스브릿지입니다.
한글 특유의 곡선과 형태가 지닌 아름다움은 특히 붓글씨로 표현할 때 더 돋보이는데요.
붓글씨에 독창적인 퍼포먼스를 접목해, 전 세계적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서예 작가가 있습니다.
글씨당 김소영 캘리그라피 작가, 스튜디오에서 만나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김소영 캘리그라피 작가 / 글씨당 대표
안녕하세요.
서현아 앵커
작가님께서는 공장 노동자로 일하시다가 캘리그라피 작가로 변신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전향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김소영 캘리그라피 작가 / 글씨당 대표
이런 말 하는 게 참 쑥스러운데요, 저는 감히, 꿈을 꾸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되게 흔하게 꿈을 이야기 하잖아요. 그런데, 그 단어는 생각보다 참 비싸더라고요. 꿈을 꾸는 데는 시간, 돈, 그리고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니까요.
저는 열아홉 살부터 스물 여섯 살 때까지 LG디스플레이에서 7년 동안 3교대 근무를 했어요.
그땐, 그냥 막연히 '글씨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작가가 되겠다거나 얼마를 벌겠다 같은 거창한 목표는 없었지만, 그냥 꿈꾸는 삶을 살고 싶었거든요.
사람들이 전향이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결심이나 각오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실 것 같은데, 사실 제 시작은 아주 작고 소박했어요.
그냥 작은 글자 하나를 예쁘게 쓰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제가 쓴 글씨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랐고, 그 마음으로 열심히 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제 생각과 철학이 글씨에 담기게 됐던 것 같아요.
결국 모든 시작은 작은 글씨 하나에서 출발했어요. 하루하루 글씨에 정성을 담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니까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부족한 게 많아서 계속 배우고 노력하고 있어요.
서현아 앵커
글씨 하나하나에 희망이 꾹꾹 담겨 있는 것 같은데요.
작가님 글씨로도 유명하시지만 이 글씨를 쓰시면서 하는 퍼포먼스들도 참 인상적이거든요.
어떻게 이렇게 캘리그라피와 퍼포먼스를 결합하실 생각을 하셨는지요?
김소영 캘리그라피 작가 / 글씨당 대표
저는 사실 비전공자이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오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글씨를 쓰면서도 늘 저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어요. 마치 언더독 같은 느낌이죠.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세상이 저를 알아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인정받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제가 먼저 나서서 보여줘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그렇게 큰 붓을 들고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는 무대로 나오게 됐습니다.
저는 무대 위에서 저의 세계를 표현하는 게 정말 즐겁거든요.
그리고 운이 좋게도 무대에서 잘 떨지 않는 편이라 퍼포먼스 형식의 활동이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캘리그라피 퍼포먼스를 통해 제가 느낀 생각과 메시지를 전하고, 동시에 한글의 아름다움까지 알릴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보람찬 것 같아요.
이 활동이 점점 더 의미 있고 특별한 길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서현아 앵커
독일부터 뉴욕 타임스퀘어 영국 에든버러까지 전 세계에서 이 퍼포먼스를 찾고 있거든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김소영 캘리그라피 작가 / 글씨당 대표
작년에 대사관 초청으로 다녀온 워싱턴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장에서 퍼포먼스를 한 것도 정말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 에든버러 페스티벌이에요.
고생도 많았고, 그만큼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거든요.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전 세계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라 분위기부터 특별했어요.
일단 아침부터 자리 추첨이 시작되는데,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좋은 자리를 잡으면 다행인데, 운이 나쁘면 구석진 데에서 하루 종일 머물러야 했거든요.
그리고 에든버러의 길은 옛날 마차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서 울퉁불퉁한 돌길이 이어지는데, 그 돌길 위에서 종이를 깔고 작업을 하려니까 쉽지가 않았어요.
붓이 흔들리고 종이가 고르지 않아 몇 번씩 조정하면서 작업해야 했죠. 그런데도 신기하게도 종이를 깔기만 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어요.
그곳에선 한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모두가 제 작품을 신기하고 아름답게 봐주는 거예요. 선과 여백, 먹의 움직임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게 참 뿌듯했어요.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한글을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자부심이 느껴지더라고요.
여러 번 공연을 했는데, 한 번은 현지의 중년 여성분이 제 작품을 사겠다고 하는거예요, 너무 갑작스러워 얼떨결에 작품을 팔았는데, 그때는 화폐 단위를 잘 몰라서 제대로 된 값을 받았는지조차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그 돈으로 함께 고생한 일행들이랑 맛있는 음식도 사 먹고 웃고 떠들었던 기억이 나요.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힘들고 까다로운 환경이었지만, 그만큼 소중한 추억과 배움을 안겨준 시간이었어요.
지금도 그 돌길 위에서 구겨지던 종이와 몰려들던 관객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서현아 앵커
세계에 우리 한글을 알리는 정말 좋은 기회였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 글씨체 '난설헌체' 예전의 허난설헌이죠, 저작권 등록도 하셨는데, 어떤 것일까요?
김소영 캘리그라피 작가 / 글씨당 대표
저는 난설헌을 정말 좋아해요.
난설헌과 제가 닮은 점이 많다고 느꼈거든요.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고, 세상에 자신의 글을 남길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저에게 큰 감동을 줬어요.
난설헌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시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글로 투영하며 시대의 벽을 넘은 사람이었잖아요.
그런 이야기가 마치 직접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어요.
저 역시 제가 가진 조건이나 한계에 갇히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제 흔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해 왔거든요.
그래서 제 글씨체에도 '난설헌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어요.
단순히 예쁜 글씨체가 아니라, 그 이름을 보는 누군가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할 용기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난설헌처럼, 한계를 넘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길 바랐어요.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서 한계에 부딪혀 웅크리고 있을 많은 '난설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져요.
그들에게 제 글씨가 작은 응원과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어요.
저는 그 모든 난설헌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서현아 앵커
최근에 정말 전국이 어수선하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국민 애도 기간이고 오늘도 화재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새해는 정말 빨리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는데, 작가님께서 정말 우리 사회가 안정되고 평화로울 수 있도록 또 EBS와 전 국민 대한민국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글을 직접 써주셨다고 합니다.
직접 영상으로 만나보겠습니다.
[VCR]
네 정말 한계를 뛰어넘는 난설헌체입니다.
이 글씨에 담긴 바람처럼 정말 모든 위기를 뛰어넘어서 올해는 모두가 평안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께서 운영하시는 글씨당 지금 강원도에 있는데요.
강원도 로컬 크리에이터로서도 활동을 하고 계시다고요?
김소영 캘리그라피 작가 / 글씨당 대표
저는 로컬이 단순히 지역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글로벌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어요.
로컬의 가치는 지역만의 고유한 색과 이야기를 담아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갈 때 비로소 빛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올해는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폰트를 제작하고, 소상공인 브랜딩, 간판 서체 제작, 대사관 현판 제작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런 작업들은 직접적으로 지역과 연결되어 있고, 지역의 가치를 더 멀리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믿어요, 결국, 제 활동이 성장할수록 지역도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요.
저와 지역이 함께 글로벌 무대에서 빛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한계에 도전하고 희망을 꽃피우는 작가님의 글씨가 많은 분들에게 용기와 위로가 되어 주기를 바라겠습니다.
작가님 듣고 싶은 말씀은 많지만 오늘 시간 관계상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