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헌 집권 이후, 사노 만적의 난, 황주 목사 김준거 등의 반란 모의, 장군 이광실의 암살 모의, 청교역리들의 암살 모의 등 그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모든 암살 시도는 실패하고, 최충헌은 자신의 반발 세력을 제거해,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청교역리 사건 당시 성문을 폐쇄하고, 가담자들을 수색, 색출하는 역할을 했던 교정도감이 상설 기구가 되고, 향후 최씨 정권의 핵심 기구로 정착한다. 최충헌의 자손들은 교정도감의 우두머리인 교정별감직을 4대 62년에 걸쳐 대대로 독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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