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역경과 고난의 연속이던 1822년 11월,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는 나름의 금전적인 보상을 기대하며 본인의 가곡 '방랑자'를 기반으로 한 환상곡을 완성한다. 당시 없지 않던 가곡 작곡가로서의 인지도를 공고히 하려던 의도였을까? 소나타 형식의 1악장을 지나면 '방랑자'의 선율을 주제로 한 변주로 이뤄진 2악장이 c♯단조로 느리게 흐르며 애수를 보여준다. A♭장조로 산뜻한 탐험에 나서는 3악장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태초의 C장조로 돌아와 고난이도의 에피소드로 발전하며, '방랑자'의 긴 음악적인 여정을 마무리 짓는다. 《방랑자환상곡》은 리스트 페렌츠(1811-1886)가 유럽을 호령하던 183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레퍼토리의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잡았고, 직접 작업한 관현악적 편곡을 자주 선보이며 비로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본 공연에서 소개하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관현악적 편곡이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출시된 그의 b단조 소나타에서는 여러 면에서 《방랑자환상곡》이 반영되어 있다.
고독과 그리움 속 타향에서의 소외감이 쌓여 피어오른 청년 슈베르트와, 그가 남긴 것을 본인의 전성기에 함께하며 음악사에 획을 그은 불세출 리스트의 정수가 한데 모인 이 환상으로 남은 가을을 채워보는 것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