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 #밀란쿤데라 #프라하의봄
00:00 도입부
00:17 작가 소개
02:37 작품 제목에 담긴 뜻
04:33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가 된 까닭
07:21 프라하에 갔던 소감
08:54 이 책 읽기의 어려움
09:05 니체의 영원회귀
11:10 남자 주인공 토마시
11:38 여주인공 테레자
12:59 안나 카레니나
14:32 운명적 비극
15:51 강아지의 이름은 카레닌
17:00 스위스 취리히로
17:50 다시 프라하로
20:33 에스 무스 자인
23:07 우연의 가치
27:5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32:07 오이디푸스 이야기
33:43 프라하의 오이디푸스
안녕하세요? 오늘은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밀란 쿤데라는 1929년 체코의 브르노에서 태어나 프라하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1968년에 일어난 '프라하의 봄' 사건 이후 반체제 인사로 내몰려 출판금지 등의 탄압을 받은 끝에 1975년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 작가이지요.
그는 아버지가 저명한 음악학자였던 덕분에 보헤미아 전통 음악과 피아노를 배웠고, 대학에서는 문학과 미학뿐 아니라 영화학을 전공하기도 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연극예술아카데미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 감독 수업을 받은 뒤 이 학교의 강사와 교수로 지냈는데,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아마데우스》를 만든 영화감독 밀로스 포먼이 그의 제자였다고 하지요. 그는 나찌 독일에 대한 반발심으로 젊어서 일찌감치 공산당에 입당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반체제 활동' 죄목을 뒤집어쓰고 공산당에서 추방당했고(1950년), 1956년에 재입당했지만 1968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을 표방한 프라하의 봄에 참여한 이후 1970년 또다시 공산당으로부터 추방당하고 말지요.
이러한 작가의 독특한 체험은 그의 첫 번째 소설 『농담』(1967)에도 깊이 반영되어 있는데, 사소한 농담 때문에 인생이 송두리채 뒤바뀌고 마는 경직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경멸에 가까운 조소가 담겨있지요. 작가가 프랑스로 망명한 이후 1984년에 출간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또한 『농담』에서처럼 전체주의 공산체제가 개인의 삶을 얼마만큼 억압하고 뒤틀리게 만드는지를 여실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제목만 봐도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1988년에 필립 카우프만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 덕분에 더욱 유명해집니다. 1989년 여름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의 제목은 놀랍게도 《프라하의 봄》이었습니다. 뛰어난 제작진과 인기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큰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작가 자신은 이 영화를 본 뒤에 자신의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걸 몹시 후회했다고 하지요.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지닌 고유의 색깔이나 의미가 왜곡되는 걸 싫어하기 마련인데, 밀란 쿤데라야말로 그런 점에 관해 유난히 예민한 작가이지요. 그는 자신의 작품이 번역 출간될 때 작가에 대한 자세한 이력은 물론 「작품 해설」조차 싣지 못하도록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는 작가로도 유명합니다.
작가와 작품을 둘러싼 대략적인 설명은 이쯤으로 그치고 이제부터는 작품 속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보지요. 이 작품은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원제목이 있는데도 굳이 국내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다소 별난 제목을 달았는데, 아무래도 원제목이 지나치게 철학적이어서 그것만으로는 작품의 내용을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이 고려된 듯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을《프라하의 봄》으로 바꾼 탓에 정치적인 색깔이 너무 도드라져 자칫 공산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반체제 민주화 운동을 그려낸 정치 영화가 아닐까 하는 오해도 생겼습니다. 물론 영화가 원작보다 '프라하의 봄'을 좀 더 부각시킨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작품은 몹시 철학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꽤나 정치적인 소설이 맞습니다. 어쨌든 작가는 1968년에 일어났던 체코의 민주화 운동과 그 반작용으로 초래된 소련군의 무참한 무력침공 때문에 개개인의 삶이 어떤 식으로 억눌리고 파괴되는지를 아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이 소설은 네 명의 등장 인물들이 펼치는 유별난 애정행각 때문에 '영화에서 자주 보여주듯이' 에로틱한 장면들이 가득한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둔 각본처럼 여겨질 때도 있지요. 더구나 등장인물들이 정사를 벌이는 장소들 또한 체코의 프라하뿐 아니라 스위스의 제네바나 쮜리히 등지였으니 그런 분위기가 더해졌지요.
이 영상을 보시는 시청자분들은 아마도(!) 이 작품을 다들 한 번쯤은 읽어보셨겠지요? 혹은 줄리엣 비노쉬가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청소년 관람불가의 「프라하의 봄」을 보신 적이 있으시겠지요? 혹시 이 둘을 모두 놓치셨더라도 체코의 프라하를 가 보신 적은 있으시겠지요? 이마저도 아니라구요? 아무튼 좋습니다. 우연히 클릭한 이 영상 덕분에 저와 함께 이 세 가지를 한 방에 모두 체험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저 또한 이 책을 두 번째로 읽기 전까지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를 못 봤습니다. 또한 프라하를 직접 찾아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밀란 쿤데라의 작품은 단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었고, 이 작가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조차 없었더랬습니다. 물론 프라하가 배출한 천재 작가였던 프란츠 카프카에 대해서도 새까맣게 몰랐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인가 늦봄에 덜컥 프라하로 날라갔습니다. 무슨 특별한 문학기행도 아니었고 말 그대로 흔해빠진 '동유럽 여행'의 첫 번째 기착지로 프라하에 닿았던 셈이지요. 꽤 오랜 시간 동안의 지루한 비행 끝에 말입니다.
사실 갑작스레 결정된 동유럽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나름대로의 여행 준비작업으로 마음이 몹시나 분주했더랬습니다. 동유럽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도시인 프라하 방문을 목전에 두고도 그때까지 프란츠 카프카나 밀란 쿤데라의 책 한 권조차 읽은 게 없었으니 그 가운데 한 두 권쯤은 반드시 읽어봐야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흘렀고, 프라하에 도착할 때까지 뒤적거린 책이라고는 고작 몇 권의 여행 안내서와 음악 및 미술에 관한 안내서 몇 권이 전부였고, 프라하 올로케로 찍었다는 모차르트 영화 「아마데우스」를 밀린 숙제하듯 간신히 다운받아 감상한 게 전부였습니다. 아, 참, 빈 국립 오페라 극장 구경을 놓칠세라 빈에 머무는 날짜에 맞춰 음악 공연 티켓을 예매하느라 낑낑댔던 기억도 있긴 있었군요.
아무튼, 체코의 역사와 쿤데라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인 상태로 저녁 무렵에 도착한 프라하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습니다. 마침 우리 일행들이 묵을 숙소가 카를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덕분에, 우리 일행은 도착한 첫날부터 밤늦게까지 블타바 강가에 자리잡은 야외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프라하의 고성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다리 밑에' 숙소를 잡았던 게 정말로 대박이었습니다!
이처럼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읽기 훨씬 전부터 우연한(!) 기회에 미리 샅샅이 다녀본 프라하 관광 체험은 훗날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읽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더랬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요.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이며, 시계탑이며 , 얀 후스의 동상이며, 바츨라프 광장 등등을 직접 걸어다니며 카메라에 쏙쏙 담아냈던 기억들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 속에서 그 장소들을 다시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되살아났습니다. 그 멋진 도시를 전혀 가 보지 못한 독자들조차 밀란 쿤데라의 작품이 지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들기 쉬운데, 그의 문학의 고향과도 같은 그 도시의 독특한 분위기에서 사흘씩이나 보낸 제가 이 작가의 작품들을 계속 외면하기란 어려웠지요.
그런데도 이 작품은 생각보다는 읽기가 조금 까다로운 책이었습니다. 적잖은 독자들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고들 하지요. 그건 바로 밀란 쿤데라가 이 작품 속에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나 고대 그리스 철학자였던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을 소설의 도입부에 덜컥 내밀면서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다음과 같이 말이지요.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처럼 밀란 쿤데라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소설의 도입부에 배치함으로써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지요. 작가가 이 말을 꺼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우리의 몸짓 하나하나는 견딜 수 없이 무거워지고, 그 반대로 우리의 삶이 단 한 번만 주어진다면 우리의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택해야 할까요?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고대의 철학자인 파르메니데스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반대되는 한 쌍으로 양분되어 있으며,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주장했지요. 작가는 그의 말이 맞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고 규정합니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고 말이지요.
이렇게 시작된 소설 속 이야기는 '존재의 무게'를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쪽으로, 혹은 그 반대쪽으로 끊임없이 옮기려는 등장 인물들의 삶의 궤적들을 잔잔하게 그려나가고 있지요.
남자 주인공인 토마시는 프라하에서 유능한 외과의사로 일하는 바람둥이이자 이혼남입니다. 그는 여러 여성들과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지속하면서도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는 에로틱한 우정을 모토로 삼아, 두 사람 중 누구도 상대방의 인생과 자유에 대한 독점권을 내세우지 말자고 단단히 못을 박지요. 그는 얼마 전에 우연히 보헤미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테레자를 만납니다.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열흘이 지난 뒤 그녀는 대뜸 프라하에 있는 토마시를 찾아가지요. (이하 생략)
이 영상에서 언급된 《동유럽 여행》에 관한 '후기'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s://blog.aladin.co.kr/oren/7590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