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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그리고 고향 | 20060130 KBS방송
▶작가 : 하주원
▶연출 : 한성순, 이성현, 심춘화, 연규완
▶출연자 : 민용태, 홍애경, 김나운, 김상현, 노회찬, 정범태, 김학철, 송윤아, 김종원, 윤무부, 신상옥, 배윤식
추석이 되면 열여덟 시간 동안 완행열차로 가야 했던 그 시절, 서울역은 기차표를 구하려는 사람으로 가득했었다. 그 인산인해 했던 풍경을 돌아본다.
◈ 필사의 귀성
지금은 KTX로 고향에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시대지만,
불과 30년 전 까지만 해도 고향을 열 여덟시간 동안 완행열차로 가야 했었다.
예매 제도가 없었던 그 시절, 서울역 광장은 고향으로 가는 기차표를 구하려는
사람으로 가득했었다. 인산인해를 이룬 귀성객들 때문에 밤이고 낮이고
구분 없이 역 광장은 장사진을 이루었으니 오죽이면 ‘귀성전쟁’이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였을까? 사정이 그렇다보니, 긴 장대로 귀성인파를 정리하는 웃지 못 할
헤프닝도 있었다.
말 안 듣는 아이들 줄 세우기 위한 방법도 아닐 테고, 당시 질서 유지를 위해
동원된 철도 공안들과 경찰들 수만 800여명이었다니 절로 이해가 되려나.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주의를 기울이긴 했지만, 60년에는 31명이 압사한 사고도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특종을 낸 신문기자를 찾아가 생생한 증언을 들어본다.
이렇게 전쟁까지 치르며 고향에 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한껏 멋 내고 의기양양하게
고향에 가는 이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구로공단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었다.
아마도 ‘관광버스 춤’이 바로 이들의 귀성버스에서 탄생한 것은 아닐까?
숨 가쁘게 기차에 오른 사람이나, 편안하게 귀성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이나
고향을 향한 마음은 그 시절, 다 똑같았다.
◈ 고향
기다림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그곳,
고향에 도착하면 힘들고 고단했던 타향살이는 잠시 잊은 채, 우쭐해지기도 한다.
“시계를 탁 차고, 몇 시, 이렇게 하며 폼 잡죠”
객지로 아들, 딸을 내 보냈던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다.
설이면 미어터지던 방앗간과 쌀을 튀겨 과자를 만드는 옥고시 가게는
점차 잊혀져 가는 추억의 장소로 바래져 간다.
배불리 먹이고도 모자라 자식들을 위해 참기름을 짰던 그 시절의 어머니가 그리워
엿가락을 뽑고, 세뱃돈을 준비하는 부안의 노부부를 찾아가 본다.
◈ 추억의 설 풍경
고향 가는 길만 보아도 요란했을 법한데, 설을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들은 얼마나 더 진풍경이었을까?
두 춘향의 대결.
그때나 지금이나 설날에는 극장가도 대목이었다.
61년 당시, 설날을 대비해 영화계에서는 대대적인 계획을 단행했다.
춘향이라는 전설적인 여주인공을 내세워 처음으로 칼라영화를 제작한 것인데
이는 ‘성춘향 vs 춘향전''''뿐만 아니라 ''''최은희 vs 김지미’ 라는
세기의 절세 미녀들이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서울인구 10명중 1명은 보았다는 영화, 성춘향에 얽힌 뒷이야기를
신상옥 감독에게 직접 들어본다.
목욕탕에서 생긴 일.
1년 중 딱 두 번한다는 목욕은 섣달 그믐 날 밤에 행해지던 연중행사였다.
살갗이 벗겨져라 밀어대던 어머니는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아이들 등을
찰싹 찰싹 후려치고, 덥다고 뛰쳐나오는 아이들을 탕 속으로 집어 넣었다.
탕 속에서 때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아이들이 슥슥 문지르고 나면 탕 속에는
국수 가락 같은 때들이 뜨고, 기다렸다는 듯이 주인이 잠자리채를 들고 와
건져내기도 했다.
마음 놓고 드세요~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던 배고프던 시절, 설날은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었으니 바로 ‘배탈’
마음껏 음식을 먹고 난 설날 저녁엔 식구들이 차례로 화장실 앞에 줄을 섰고,
급기야 약방 문을 두드려야 했다. 설 쇠던 약방 주인도 배탈 환자들을 대하느라
설을 거꾸로 ?다는 일화도 있다. 명절을 쇠기 위해 제수용품을 준비하면서 늘
함께 준비해야만 했던 것이 바로 소화제였다고. 당시에는 광고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설날 특수를 톡톡히 본 제약회사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