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용대가 주둔하고 있던 중국 남부에는 한국인 수가 적어 지원자 모집이 어려웠다. 의용대 내부에서는 동포들이 많은 황하 이북으로 이주하자는 여론이 거세졌다. 화베이 행을 결정한 조선의용대는 1941년 초부터 300여 명의 본대 중 100여 명을 먼저 태항산 일대로 이동시킨다. 의열단 시절부터 김원봉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석정 윤세주와 조선의용대의 핵심간부인 박효상, 이춘암 등도 이때 함께 떠났다. 산시성 쭈어챈현은 중일전쟁 당시,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 129사단이 주둔하며 일본군과 대치했던 격전지였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항일에 소극적이었고, 항일전선이 형성된 곳은 주로 팔로군 주둔지였다. 조선의용대원들은 1941년 여름, 팔로군과 함께 항일유격투쟁을 펼친다. 일본군과의 전투에 목말라 있던 조선의용대가 팔로군에 합류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조선의용대 주력이 떠난 후에도 김원봉은 본부대원들과 함께 충칭에 남아 있었다. 국민당 정부가 있는 충칭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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